호도스의 서재
칼 바르트의 성경이해
작성자
hodos
작성일
2020-03-24 10:50
조회
183
바르트의 성경이해
바르트는
고트홀트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 1729-1781) 이후,
근대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큰 짐이 되어 왔던 문제,
해결을 위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여 개신교회가 아등바등하여 몸부리쳐 왔던 문제에 대하여,
자신을 위해서 또한 타자를 위해서 진중한 하나의 해답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바르트의 대담한 성경이해에서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바르트가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 명확하게, 그리고 아주 단호하게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바르트의 이러한 주장은 당연하다고 말하면 아주 당연한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당연한 사실이었지만,
레싱 이후 근대신학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할 정도로 무시되어 왔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을 철저하게 역사적 산물로 주장하였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러한 주장을 무조건적으로 긍정하여 왔기 때문에,
성경이 계시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어딘가에서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인간의 죄 문제는 그들 신학 안에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양심, 또는 종교심과 같은 감정들이 신학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예로, 이러한 주장의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는 "민족"이라는 주제가 중요한 자리를 꿰차고 앉습니다.
하여, 자유주의 신학은 그 민족의 고유성, 민족의 역사성을 높이 평가하는 자연주의 신학으로 자연스레 이어집니다.
즉, 자유주의 신학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자연신학으로 발전하게되어 간 것입니다.
자연신학을 근거로 이것을 민족의 종교적 윤리적 규범으로 연결하여 버립니다.
하여, 민족적 우월주의가 자연스레 신학적으로 긍정되어가는 토양이 형성되었고,
이른바 우등 민족이 열등 민족을 계몽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통하여,
게르만주의, 일본의 야마토주의에 대한 신학적 이론 구축에 이바지하게 되어버립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나 독일의 교회가 그들 전체주의에 어용화된 신학적 근거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어디까지나 역사적 산물로만 생각했던 자유주의 신학의 이탈에 대하여,
바르트는 단호하게 NO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의 신학적 탈선은 민족중심의 제국주의를 형성하여 갑니다.
그들의 탈선의 주된 원인은 성경에 대한 이해에 있었습니다.
바르트는 그러한 자유주의 신학의 성경관을 거부한 것입니다.
어떤 역사학자는,
근대신학에서 여전히 건재하였던 성경의 역사학적 연구를,
깡그리 무시하는 듯한 바르트의 이해는 마치 근본주의자에 가까울 정도이다,
라고 바르트의 성경관을 평가했다.
바르트는 자연적인 감정, 또는 심성 등을 강조하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여,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으로 믿었습니다.
바르트는
고트홀트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 1729-1781) 이후,
근대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큰 짐이 되어 왔던 문제,
해결을 위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여 개신교회가 아등바등하여 몸부리쳐 왔던 문제에 대하여,
자신을 위해서 또한 타자를 위해서 진중한 하나의 해답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바르트의 대담한 성경이해에서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바르트가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 명확하게, 그리고 아주 단호하게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바르트의 이러한 주장은 당연하다고 말하면 아주 당연한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당연한 사실이었지만,
레싱 이후 근대신학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할 정도로 무시되어 왔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을 철저하게 역사적 산물로 주장하였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러한 주장을 무조건적으로 긍정하여 왔기 때문에,
성경이 계시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어딘가에서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인간의 죄 문제는 그들 신학 안에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양심, 또는 종교심과 같은 감정들이 신학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예로, 이러한 주장의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는 "민족"이라는 주제가 중요한 자리를 꿰차고 앉습니다.
하여, 자유주의 신학은 그 민족의 고유성, 민족의 역사성을 높이 평가하는 자연주의 신학으로 자연스레 이어집니다.
즉, 자유주의 신학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자연신학으로 발전하게되어 간 것입니다.
자연신학을 근거로 이것을 민족의 종교적 윤리적 규범으로 연결하여 버립니다.
하여, 민족적 우월주의가 자연스레 신학적으로 긍정되어가는 토양이 형성되었고,
이른바 우등 민족이 열등 민족을 계몽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통하여,
게르만주의, 일본의 야마토주의에 대한 신학적 이론 구축에 이바지하게 되어버립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나 독일의 교회가 그들 전체주의에 어용화된 신학적 근거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어디까지나 역사적 산물로만 생각했던 자유주의 신학의 이탈에 대하여,
바르트는 단호하게 NO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의 신학적 탈선은 민족중심의 제국주의를 형성하여 갑니다.
그들의 탈선의 주된 원인은 성경에 대한 이해에 있었습니다.
바르트는 그러한 자유주의 신학의 성경관을 거부한 것입니다.
어떤 역사학자는,
근대신학에서 여전히 건재하였던 성경의 역사학적 연구를,
깡그리 무시하는 듯한 바르트의 이해는 마치 근본주의자에 가까울 정도이다,
라고 바르트의 성경관을 평가했다.
바르트는 자연적인 감정, 또는 심성 등을 강조하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여,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으로 믿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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